오늘의 일기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 사람

묘운 작가 2023. 9.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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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가상 일기

일기 제목: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 사람
날짜: 2023년 9월 15일
주인공 소개:

  • 이름: 이윤우
  • 나이: 32세
  • 직업: 서울의 한 직장인
  • 취미: 일기 쓰기
  • 소원: 나의 인생 하루하루가 소중히 기억되는 것

 
일기 내용:
 

아침 8시, 두 눈을 비비며 따스한 주말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오늘은 간만에 맞이하는 설레는 주말 아침이었기에 일어나는 게 딱히 힘이 들지 않았다. 오늘 맞이한 주말 아침이 더욱더 설레였던 이유는 오랜만에 부산에 있는 본가로 내려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5년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홀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였기에 부산으로 가는 날만큼은 왠지 모를 정겨움과 편안함이 마음 한 편에 자라나곤 했다. 서울에서 보내는 힘겨운 나날들을 부산에 있는 가족, 친구 그리고 추억들이 보상해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집을 나서 부산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인지 부산행 KTX 열차 안에서 한없이 잠만 잔 나는 오후 2시쯤이 되었을 즘 부산에 다 도착한 후에야 눈을 떴다. 아 이 향긋한 바닷냄새와 왠지 모를 따스한 분위기.. 곳곳에서 들리는 정겨운 사투리가 내 귀를 신 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맞이하는 부산의 경치를 즐기며 집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내 어릴 적 추억이 묻은 수많은 장소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놀이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멈추려고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무언가가 나를 놀이터로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가까이 마주하게 된 놀이터에는 10년 전의 기억 속 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아주 많이 좋아했던 유민이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이고 있었다.
 

5년 전 서울로 올라와 부산과 작별하면서 흐릿하게 사라졌던 내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 둘 씩 머릿속에 노크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유민이는 내가 10년 전 대학을 다닐 시절, 참 좋아했었던, 아니, 아주 아주 많이 좋아했었던 여자아이였다. 내 친구의 친구였던 유민이를 친하게 지내보라며 소개받았던 그날의 감정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시절 짧은 연애를 몇 번 해본 나였지만 이토록 첫눈에 반하게 만든 사람은 유민이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친구로서 가까워졌던 우리는 시간이 흘러 5년 후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차마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홀로 속 앓이를 하며 고백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친구를 짝사랑해본 모든 사람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친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하는 그런 마음.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던 그때의 나는 결국 고백 한번 하지 못한 채 서울로 떠나게 되었었다.
 

그렇게 혼자 놀이터 앞에서 추억에 빠졌던 나는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급하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우리 동네 곳곳에는 그때의 내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묻어 있었다. 5년 전 홀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던 유민이었기에 한때라는 단어를 빌려 추억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만,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긴 했나 보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마주한 여러 흔적에는 행복과 설렘도 있었지만 아픔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아픔도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씨앗이었던 것 마냥 꽃이 되어 돌아온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집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가족과 인사를 나누며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이토록 마음이 편안할 수가 있을까.. 역시 집이 최고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위해 진수성찬으로 한상차림을 준비하신 어머니는 내가 식사를 다 끝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만나는 이성은 있느냐고 물으셨다. 정말이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신 우리 어머니였다.. “내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엄마~” 라고 말한 나는 멋쩍게 웃으며 괜한 기대 말라며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갑작스레 유민이의 이름을 꺼내며 나의 심장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유민이 걔는 지난달에 결혼했다더라~ 진우 엄마한테 들었다.” 이 얘기를 들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행복했던 내 진실 된 마음이 느껴졌다. 정말 이제는 추억으로만 묻어둔 나였구나 싶었다. 이제는 정말로 유민이의 행복한 미래를 기도해 줄 수 있게 되었을 만큼 그녀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자정이 되서야 각자 방으로 잠을 청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온 나는 예전에 내가 썼던 일기장을 읽어보며 다시 한번 추억의 세상에 빠져들곤 있었다. 참 웃긴 게 나의 20대 초반을 함께했던 일기장의 절반 이상은 유민이의 이야기였다. 20대 초반의 나에게 그녀는 정말로 나 자신보다도 소중했던 사람이었나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고, 내가 먹고 싶었던 것 보다도, 가고 싶었던 곳 보다도, 그리고 꿈꿔왔던 것마저도 그녀가 나보다도 우선이었던 그때의 나였던 것 같다. 그냥 그녀가 너무 좋았었나보다. 그렇게 오늘 밤 나는 잠시나마 20대 초반의 나로 돌아가 그때의 장면들과 마주하였다. 이제는 정말로 추억이 된 그녀이지만 진심으로 응원하고 잘되길 바란다. 나도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나의 더 행복해질 미래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니까. 소중했던 추억을 나에게 선물해 주어서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전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의 첫 사랑은 항상 너무나도 애틋한 것 같다.
 
 
작가의 말:
“저의 다섯 번째 가상일기로 모두가 겪어봤을만한 짝사랑, 그리고 첫 사랑에 대한 추억을 담아보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나 첫 사랑은 존재합니다. 이상하리만큼 첫 사랑은 아프기도 그리고 애틋하기도 하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상대인 만큼 더욱더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 한편에 남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불씨가 결국엔 녹아내리듯이 평생 강렬할 것만 같던 첫사랑의 불씨 역시도 우리 마음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리다가 결국엔 사라지게 되죠. 그렇게 사라진 불씨는 우리의 추억 속에 간직되어 아주 가끔씩 생각날 때 들여다볼 수 있는 젊은 날의 책갈피가 되어줍니다. 그 한순간 만큼은 아주 행복했던 기억으로 말이죠. 여러분의 진정한 첫 사랑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아직도 당신의 마음 속에 간직되고 있나요? 가끔은 사랑에 서툴렀던 어린 날의 우리를 추억해보며 그땐 그랬었지..하고 내 자신을 토닥여 줍시다. 오늘도 가상일기를 찾아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