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 뚜비
오늘의 가상 일기
일기 제목: “우리 집 막내, 뚜비”
날짜: 2023년 9월 13일
주인공 소개:
- 이름: 권나윤
- 나이: 28세
- 직업: 어엿한 직장인
- 같이 사는 가족: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강아지 뚜비
- 소원: 가족 모두가 항상 건강하기
일기 내용:

아침 9시, 우리 집 강아지 뚜비가 나의 얼굴을 핥으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얼마 만에 맞이하는 여유로운 주말 아침이라서 그런지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다들 공감하지 않는가? 하루하루가 고된 20대 후반의 직장인에게 주말에 9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체벌이다. 그렇게 나는 뚜비를 내치며 이불 안으로 숨어버렸다. 그러자 뚜비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뚜비야, 직장인은 주말이면 10시 이후에 일어나주는 게 국룰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가여운 얼굴을 하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작은 뚜비의 두 눈을 결코 무시할 순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뚜비와 함께 거실로 나왔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 가족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모두 티비 앞 소파에 앉아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티비 속에는 작은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나와 신나게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는 찢어진 휴지와 인형 솜털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 장면을 보고 깔깔 웃으며 우리 뚜비도 한때는 저랬다며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직도 한 없이 귀여운 우리 뚜비였지만 올해 15살이 되면서 확실히 전보다는 많이 침착해진 우리 뚜비였기 때문이다. 강아지에게 15살이라는 나이는 사람 연령으로 치면 7~80대의 노인이다. 즉 우리 뚜비는 노견이다. 왠지 모르게 측은해진 기분을 다듬으며 나는 계속해서 가족과 티비를 시청했다.

오후 1시 점심이 되자 가족은 하나둘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출근을 빼면 워낙에 집순이인 나는 오늘도 역시 집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을 나서며 나에게 뚜비도 나도 운동을 좀 해야 한다하시며 뚜비와 산책을 다녀오라고 하셨다. 주말에는 집에 콕 박혀서 넷플릭스 시청이 국룰인데 말이다.. 세상 귀찮은 내색을 하며 “이따 컨디션 좀 보고요~”라고 말했다. 가족 모두가 집에서 나가고 집에는 나와 뚜비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뚜비와 눈이 마주쳤다. 예전에는 우주처럼 한 없이 맑은 뚜비의 눈에는 백내장이 오고 있었다. “뚜비야, 산책 갔다올까..?” 라고 한마디를 던지자 그새 뚜비는 마치 2살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팔짝 뛰어 어서 나가자며 짖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밥이랑 산책이란 단어는 죽을때 까지 안까먹나보다.

그렇게 나갈 채비를 하고 뚜비와 나는 집을 나섰다. 오늘따라 상쾌한 공기와 따듯한 햇빛이 반겨주며 우리의 산책을 응원하였다. 하나둘 하나둘, 나와 뚜비는 걸음을 맞추며 동네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주변에는 수많은 반려견과 주인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어린 반려견과 달리 우리 뚜비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천천한 걸음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뚜비를 산책시키는 것이 아닌 뚜비가 나를 산책시키는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리던 뚜비였는데.. 오늘따라 괜스레 예전의 뚜비가 많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예전 같았으면 한 시간씩 산책했을 나와 뚜비였지만 뚜비가 너무 힘들어하는 탓에 오늘은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뚜비는 나름 만족하였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쳐다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실 바닥에 누워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휴식을 가졌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되고 가족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또다시 티비 앞 소파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특히 동물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저녁 시간 역시도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며 과일을 깎아 먹고 있었다. 이번에 티비에 등장한 강아지는 16살의 한 노견이었다. 그 노견은 건강이 매우 안 좋아져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의 애틋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노견의 건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으며 수의사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그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왠지 모르게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노견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옆에 있는 뚜비 역시 우리 곁을 지킬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나는 뚜비를 안아 내 무릎에 앉혀 포근하게 껴안았다.

밤이 되고 나는 침대에 누워 현재 일기를 쓰고 있다. 내 옆자리에는 뚜비가 어서 자자며 내 어깨에 기대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 뚜비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새삼 늙어버린 뚜비의 눈망울이 고달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뚜비의 눈망울 속 비치는 나의 모습 역시 예전에 비해 달라져 있었다는 걸.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부모님이 데려오셨던 뚜비가 현재 직장인이 된 내 곁을 여전히 지켜주고 있다. 뚜비의 건강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가족과 뚜비 서로에게서 오가는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내 아이에게 꼭 뚜비를 소개시켜줄 것이다. 내 어린 시절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소중한 막냇 동생이라며 말이다. 그러니 뚜비가 앞으로도, 그리고 아주 긴 시간 동안 주말 아침마다 늦잠을 자려는 나를 핥으며 깨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의 말:
“저의 네 번째 가상 일기로 한 가정과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족 여러분은 공감하실 테지만 반려견은 가정의 한 일원이자 어여쁜 막내입니다. 내가 외출을 하고 있을 때 집에 있는 반려견만큼 보고 싶은 것이 없을 정도이죠.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반겨줄 반려견을 보려 집에 일찍 들어가 보곤 합니다. 저 역시 현재 노견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이번 가상 일기를 쓰면서 참 많은 생각이 오고 가곤 했습니다. 우리 강아지가 언제나 저희 곁을 지켜주진 못할지언정, 우리의 마음만큼은 영원할 것이란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는 점이죠. 최근 귀찮다고 강아지를 산책시켜 주지 못하신 분들! 오늘 또는 내일만큼은 꼭 강아지와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가상 일기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