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사과 더 깎아주세요

묘운 작가 2023. 9. 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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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가상 일기  

일기 제목: “사과 더 깎아주세요
날짜: 2023년 9월 9일
주인공 소개:

  • 이름: 김영은
  • 나이: 18세
  • 고등학교 2학년
  • 같이 사는 가족: 김순복 할머니 (70세)
  • 목표: 돈 잘 버는 백수 되기

 
일기 내용:
 

아침 7시, 코를 간지럽히는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에 눈을 떴다. 그리고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구분 허리를 툭툭 치시며 아침을 준비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분명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등교할 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할머니는 참 부지런도 하다. 아침잠이라는게 정말이지 1도 없다. 1도. 그렇게 나는 터벅터벅 방 밖으로 살며시 나와 귀찮다는 듯이 식탁에 앉아 할머니에게 또 된장찌개냐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된장찌개 먹으면 몸에 냄새가 배서 싫다고 말씀드렸는데.. 내 말은 하나도 반영을 안 하시나 보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사람은 밥심이라며 공기에 밥으로 탑을 쌓으신 후 식탁에 올려놓으셨다. 이런 걸 보통 식폭행이라고 하던데. 나는 매일 당하고 있다.
 

아침 8시 10분, 나는 헐레벌떡 현관문으로 나섰다. 물론 할머니가 주신 밥은 반도 먹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매일 똑같은 나물 반찬에 된장찌개, 지겹도록 먹었다. 그렇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고 가라고 보채는 할머니를 뒤로한 채 등굣길에 나섰다. 다행히 학교가 집 앞이라 1분 차이로 지각하진 않았지만, 괜히 심술이 났다. 할머니 때문에 매일 지각 위기를 겪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우리 할머니는 무슨 낙으로 살까.. 아침잠이라도 더 자시지. 귀찮기만 하고.. 별생각이 다 들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할머니에게서 길러진 나였지만 여태까지 나는 감사함보단 귀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이제 으른인데.. 차라리 나가서 다른 할머니들처럼 같이 꽃도 보러 가고 고스톱도 치셨으면 좋겠다.
 

하여튼 그렇게 학교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배에서 심각한 통증을 느끼게 되고 학교 보건실을 찾아 한참을 누워있었다. 정말이지 이것보다 꿀 같을 수가 없었다.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지, 공부도 안 해도 되지. 그렇게 나는 한술 더 떠 약간의 엄살을 덧붙인 연기를 하며 조퇴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오후 1시,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갑자기 통증도 다 낫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굽은 허리로 골목을 지나가는 할머니를 멀리서 보았다. 아니 우리 할머니도 나가서 놀긴 노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할머니를 부르려던 찰나 할머니가 손에 쥐고 계신 종이박스를 보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떨구며 혼자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분명 평소에 내가 학교에 나가면 집에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본다고 심심하다고 하셨는데.. 우리 가족이 조금은 어려운 상황인 건 알았지만 이런 일을 하고 계실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오후 3시, 할머니가 들어오신 후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시곤 놀라셨다. 그러시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괜스레 동네 한바퀴 산책을 하고 오시니 개운하시다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는 순 거짓말쟁이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되고 오늘의 저녁 메뉴는 따끈따끈한 김치찌개였다. 그 옆으론 아침에 먹었던 나물 반찬이 그 자리 그대로 배치되었다. 평소라면 식탁에 앉아서 한숨부터 쉬었겠지만, 이상하리만큼 오늘의 저녁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허겁지겁 음식을 삼켰다. 앞에 고스란히 놓인 할머니의 거친 손에서부터 만들어진 오늘의 저녁은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그렇게 할머니는 뿌듯하신 표정으로 사과를 깎아주신다며 비워진 밥그릇 앞에 사과를 내어주셨다. 평소라면 꾸역꾸역 먹었겠지만, 오늘만큼은 한 입 거리였다. 무엇 때문인지 왠지 모를 짠맛이 느껴진 사과였지만 나에겐 금 사과나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확인하신 후 깜짝 놀라시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동문서답을 하였다. 할머니 사과 더 깎아주세요.
 

밤 11시 30분, 책상에 앉아 밀린 숙제와 공부를 하고 일기를 작성하고 있다. 오늘은 정말이지 이상한 기분의 하루이다. 어쩌면 나는 내 미래만을 위해 살아가는데 할머니는 오로지 현재의 나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계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낙은 무엇일까. 할머니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며 고생스러운 일을 하실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바보였다.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할머니의 거친 손을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잡아주겠다고.
 
 
작가의 말:
“저의 두 번째 가상 일기로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여러분도 항상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애틋해지시나요? 가끔은 너무나도 든든하기도, 어떨 때는 마음이 아파지기도 하는 것이 바로 할머니의 존재죠.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할머니가 나를 어떻게 여기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퍼부어 주셨는지. 그리고 내가 그거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지. 누가 뭐래도 나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은 할머니입니다. 오늘도 가상 일기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